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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힌티나의 수도로

좋은 공기(Buenos Aires)’라는 의미를 가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300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로. 이름처럼 좋은 공기는 아니지만 도시 구조가 계획되고 정열과 낭만으로 가득 찬 도시로 생각 된다

한때 세계에서 미국과 견줄만큼 경제 대국을 자랑하던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갖가지 역사적 건축물과 유적들, 그리고 이주민들이 하역 및 뱃일하던 사람들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탱고를 떠올리게 하며 최근에는 월드컵의 우승을 이끈 매시가 있는 나라, 계획적이고 비교적 안정된도시로 보이지만 경제적으로 불안 하며 인프레이션이 심한 나라이기도 한 나라로 기억 됩니다아르헨티나의 유명 축구팀인 보카 주니어스 팀의 홈구장

 

Don't Cry For Me Argentina Sinead O'Connor (480p).mp3
3.82MB

 

변려견들이 많아 항상 바닥을 조심 해야 한다는 

Floralis Generica 이 조각물은 UN 광장 (Plaza de las Naciones Unidas)에 위치하고. 아르헨티나 건축가인 에두아르도 카탈라노가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 헌상한 작품인데. 2002년 4월 13일 제막되었으며, 이 작품의 재료는 비행기 제조회사인 록히드 마틴 아르헨티나가 제공하였다.하루의 시간에 맞춰 꽃잎이 자동적으로 열렸다가 닫혔다가 하는 전기 시스템이다현재는 예산의 문제로 고장 난후 수리가 않되어 이렇게 대충 개화된 모습이다

레콜레타 공동묘지

에바 페론(Eva Peron, 1919~1952)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영화배우로 꿈을 키웠던 에바는 1935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옮겨가서 5년 만에 연예인으로 성공하게 되며 1944년 노동부 장관이었던 후안폐론을 만나 결혼 하여 남편의 대통령선거를 지원하여 성공하고 이후 1946년 후안 페론은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고 영부인이 된 에바는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가난한 이들의 삶과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면서  노동자 및 하층민들에게 후한 정책을 펼친다. 이 와중에 프랑스로부터 식량 배급 약속을 받거나 스페인에서의 아동 구호 활동, 노동 단체와 기업 등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에바 페론 재단의 성립과 같은 자선 사업 정책으로 민중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면서 남편인 후안 페론보다도 더욱 유명해지게 되고 덩달아 남편 후안 페론의 인기도 치솟아오른다.
하지만 1950년 자궁암 진단을 받고 1년 후에 부통령 후보로까지 지명되지만 군부의 압력으로 후보 자리에서 물러난다. 1951년 11월에 재선에 성공한 후안 페론은 에비타를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지만 결국 건강 악화로 1952년 7월 26일 33세의 이른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만다. 오랜 투병으로 몹시 야위어 사망 당시 겨우 32kg이었다고 한다.
많은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였고 장례식은 국장으로 성대히 치러졌다.사후 지금도 부유한 자들의 창녀인지 가난한 자들의 성녀인지 논란이 되고 있으니 아르힌티나의 국민들 정서에는 그를 성녀로 인식 하고 있다고 한다. 
에바폐론 묘지가 인상적이었으며 공동묘지를 무슨 볼거리로 추천하나 싶었는데 아르헨티나의 유명인사들의 묘지로 규모도 크고, 묘지 하나하나 조각상들도 볼만하다 묘지 입구는 유리문이나 철창으로 되어있는데 안을 들여다보면 관들도 볼 수 있어 신기하면서도 묘지임을 실감케 한다

엘 아테네오 서점
1915년에 개장한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 서점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알려져 있음 
무대 쪽엔 카페가 자리 잡고 있고 천장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마요 광장(Plaza de Mayo)

마요광장(Plaza de mayo)은 해석하면 5월 광장으로 주변에 대통령궁, 대성당, 그리고 유럽풍들의 건물들이 몰려있어 마치 유럽인듯싶다

 

라 보카 (La Boca)

탱고의 발상지인 거리에는 레스토랑들과 카페가 많은데 몇몇 레스토랑에서는 탱고춤을 보면서
식사할 수 있다